- 현수는요?
- 아직.. 아무래도 내가 때린 게 몹시 화났던 거 같아. 그냥 오늘은 내버려두자.
지도 마음 좀 다스리면 내일은 들어올 거다. 들어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마.
- 그러셔야 할거에요. 현수, 반드시 제자리에 데려다 놓으세요.
안 그랬다간 엄마든 저든 둘 중 하나는 이 집을 나가게 될 테니까.
- 참. 엄마가 현수한테 지어주신 영양제 말이에요.
그걸 현수가 버렸다는데.. 이상하지 않아요?
- 병원에서 다른 약을 지어왔다더라고..
- 그 이유로 약을 버렸다?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지어주신 약을?
- 그, 그러니까 나도 당황했지.
- 걔. 다른 이유 있어요. 엄마가 지어주신 약, 부적이라면서 먹던 애예요.
단지 병원에서 다른 약을 지어줬다고 버릴 애가 아니라고요.
- 글쎄..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?
- 알아봐야겠어요. 걔가 왜 그랬는지.
- 제수씨는 뭐 짚이는 거 없습니까? 현수가 왜 집을 나갔는지.
- 그거야.. 어머니께 맞았잖아요. 저라도 속상해서 나갔을 것 같은데..
- 그런데 현수는 그렇다고 나갈 사람이 아닙니다.
- 네?
-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마주하고 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.
이런 식은 아니라는 겁니다.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요.
혹시나 제수씨는 그거를 아나 물어본 거예요.
- 제가 그걸 어떻게..
- 뭐, 그게 뭐든..
현수가 집을 나간 이유가 관련된 사람들은 내가 모조리 다 가만 안 둘 겁니다.
- 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?
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… 어디서 가출이야?
못 배운 사람처럼 천박하게 굴지 말고 당장 들어와.
봐주는 건 오늘까지야. 너 내일도 안 들어오면…
…
[취소되었습니다.]
- 아무것도 몰랐어. 혼자서 당하고만 있는데 막아 주지도 못했어.
나.. 뭐하는 거야? 도대체 나 뭐 하고 있었냐고!
- 가출? 쇼하지 마요, 제수씨.
- 오해? 오해는 무슨 오해요.
여기 버젓이 현수가 먹은 약이 피임약이라고 적혀있는데, 뭐가 오해!
- 엄마 큰아들. 오늘부로 죽었습니다.
- 던져서 박살 났어. 새로 개통하자마자 첫 전화가 너더라고.
그동안 연락 한번 없이 나 개무시한 거에 대한 보답으로 나도 안 받을까 했는데...
난 너처럼 독하지가 못해서.
- 다 알았다면서요?
- 보면 몰라? 나 집 나왔어. 두 번 다시 엄마 안 봐.
너한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엄마, 필요 없어.
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너도 보기 싫어.
-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일을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...
네 멋대로 집만 나가면 그만이야? 도대체 너한테 나는 뭐야?
- 수호씨...
- 너! 나 바보 만들었어. 이건 누구보다 내가 알았어야 할 일이야.
헌데 어떻게 내 와이프한테 일어난 일을 나는 모르고 있어야 해?
나 호구야? 바보 멍청이야?
- 그게... 그렇게 섭섭했어요?
- 섭섭한 정도가 아니야. 이건 절망이라고!
- 나한테서 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...
내가 애를 못 낳도록 피임약을 먹였다는 걸 아는 그 순간.
내가 누굴 생각해요? 누굴 배려해요?
- 그래서 섭섭해. 나 네 남편이야. 그런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.
- 반포 빌라 리모델링 끝나면 거기 들어가 살 거야. 거기선 우리 둘이 살아.
이제 내 가족은 너뿐이야. 다 버리고 나왔으니까 그렇게 알아.
넌 어디서 묵고 있어?
- 혜정이네 집에서요.
- 정말 끝까지 멋대로구나. 이리로 와.
- 싫어요. 당신 여기 있는 거 어머니가 아는 거 시간문제일 텐데...
여기서 당신 어머니하고 나 마주치기 싫어요.
그리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혜정이랑 같이 있는 게 편해요.
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요.
- ...가봐.
그 촌스러운 건 뭐지? 집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 급하게 촌티 내지 마.
품위 유지는 하고 있어. 너 복수호 여자야.
전화기 꺼놓지 말고. 답답해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.
- 그냥 잠깐이라도 형수님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왔어요.
- 근데 왜 내 얼굴 안 봐요? ...서방님.
- 죄송해요. 미안해요. 제가 사과할게요. 잘못했습니다, 형수님.
- 나도 서방님한테 미안해요.
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은 지키는 거라고 해놓고... 그래놓고 난 이렇게 나와버렸네요.
나 봐요, 서방님. 괜찮아요. 서방님, 나한테 안 미안해해도 돼요.
나와서 보니까 그래도 그 집에서 내 편 가장 많이 들어준 사람, 서방님이더라고요.
그래서 더 서방님이 맘에 걸려요.
- 실은 부탁하러 왔었어요. 돌아와 달라고.
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가족이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와서 그 자리 지켜달라고.
형수님한텐 지울 수 없는 상처겠지만, 엄마도 많이 후회하고 있으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.
한 번만...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.
근데 형수님 얼굴 보는 순간 마음 바꿨어요.
형수님처럼 착한 사람한테 그런 짓까지 저질러놓고 다시 돌아와 달라니.
나한테도 뻔뻔하고 못된 피가 흐르나 봐요.
형수님, 우리랑은 연 끊고 사세요. 아무도 형수님 더 아프게 할 자격 없어요.
하루 이틀도 아니고 2년씩이나 피임약 먹인 엄마를 나도 용서를 못 하겠는데 형수님이 왜요?
그러니까 형수님은 이제 형만 생각하고 사세요.
우리랑은 연 끊고 형하고만 행복하시면 돼요. 그러세요, 형수님.
- 뭐, 나한테 죄지은 거라도 있어요? 왜 날 똑바로 안 봐요?
- 수호씨...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. 얼른 집에 가.
- 놔. 집? 나도 집에 가고 싶어. 네가 있는 집에.
내가 분명히 말했지. 나 두고 없어질 생각 말라고. 지구 끝까지 쫓아갈 거라고.
나랑 같이 안 갈래? 더는 안 되겠다.
반포 빌라 인테리어 다 되면 그때 부르려고 했는데.
나 버리고 너 혼자 그렇게 뛰쳐나간 거 쉽게 마음 안 풀려고 했는데...
네가 내 옆에 없는 거 더는 못 버티겠어.
너 없이 아침 맞고, 너 없이 잠자리 드는 거... 더는 못 하겠다고.
네가 깨워주는 아침 맞고 싶고 네가 해주는 음식 먹고 싶고
너 만지고 싶고 네 냄새 맡으면서 자고 싶어.
- 술 깨고 나중에 얘기해. 돌아가.
- 너 원래 이렇게 독한 애야? 나는 취하지 않으면 너 없이 잘 수도 없어!
도대체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.
- 내가 독하다고?
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뭔 줄이나 알아?
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야.
돌아가.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.
- 가지마, 현수야. 가지마. 너 없인 못 살겠어.
나, 널 위해서라면 가족도 버릴 수 있어.
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. 아무 데도 가지마.